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크라이나-리투아니아 관계 (문단 편집) === 19세기 === 1897년의 러시아 제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리투아니아 지역 내 [[우크라이나인]] 인구는 2,500여 명 정도에 달했다. 우크라이나에 정착한 리투아니아인 인구는 상당수가 폴란드인과 동화되었고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폴란드 왕국이 초청한 유대인 인구 역시 우크라이나 인구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. 리투아니아 중 러시아 제국에 속한 지역은 주로 가톨릭을 믿었고, 서쪽의 리투아니아 마이너([[쾨니히스베르크]] 일대)의 리투아니아인들은 [[프로이센]]의 오랜 지배의 영향으로 [[루터교회]]를 믿었다. 리투아니아 개신교도들이 리투아니아어로 인쇄한 책은 러시아 제국 영내의 리투아니아인 가정들로 밀수되었고 이는 리투아니아 민족주의 발전 및 식자율 개선에 큰 영향을 주었다. 당시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제국에서 가장 문해율이 높은 지역 중 하나였다.[* 1904년 당시 리투아니아인들의 평균 문해율은 약 70%로 유대인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었다. 아직 리투아니아인 상당수가 농민이고 유대인들은 대부분 도회지에 거주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수준] 반면 우크라이나인들의 상황은 이만큼 좋지 못했다.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리투아니아인들처럼 거주지역 대부분이 러시아 제국 영토였고 서쪽의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 있는 [[오스트리아 제국]]의 동포들과 연락이 가능했다.[* 프로이센 영토에 있는 리투아니아인들과 러시아 제국 영토에 있는 리투아니아인들이 종교가 달랐던 것처럼 러시아 제국 영토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과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도 종파가 달랐다. 러시아 제국에서는 [[정교회]]를 믿었고,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의 우크라이나인들은 [[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]]에 속해있었다.] 그러나 프로이센령 리투아니아 주민들과 다르게 오스트리아 제국령 [[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]]은 매우 가난한 지역이었고 이 지역의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제국 내 동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힘든 입장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